AI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는 어떻게 자라는가
박비봉
얼마 전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다"라는 글을 쓰면서, 마지막에 아직 답을 못 찾은 질문 몇 개를 솔직하게 적었다. 그중 하나가 이거였다.
AI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의 성장 경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그 글을 쓴 뒤로도 이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명쾌한 답은 없다. 다만 몇 달간 부딪히며 생각한 것들이 있어, 후속편으로 적어둔다. 결론이 아니라 중간 보고에 가깝다.
사라진 첫 계단
예전에 주니어 개발자는 어떻게 자랐는가.
대개 비슷했다. 단순한 화면 하나, 반복적인 CRUD, 누군가 남긴 버그 픽스. 시니어가 보기엔 사소하고 지루한 일들. 주니어는 그 일들을 직접 손으로 해내면서 배웠다. 수백 번 같은 패턴을 짜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패턴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가 몸으로 이해됐다. 지루한 반복은 사다리의 첫 계단이었다.
그런데 AI가 바로 그 첫 계단을 가져갔다.
이제 단순한 CRUD, 반복적인 코드, 정형화된 버그 픽스는 AI 에이전트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낸다.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는 곤란한 일이 벌어진다. 주니어가 밟고 올라설 첫 계단이 사라진 것이다.
"코드를 직접 안 짜는데 시니어가 될 수 있나"
여기서 자연스러운 걱정이 나온다. 코드를 손으로 충분히 짜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좋은 판단을 내리는 시니어가 될 수 있는가? AI가 만든 코드를 검토하려면 그 코드를 직접 짜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걱정은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AI가 다 해주니 괜찮다"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위험은 존재한다. 이해 없이 AI의 결과물을 통과시키기만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생산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5년이 지나도 시니어가 되지 못한다. 경력만 쌓일 뿐이다.
그런데, 시니어의 일은 원래 코드가 아니었다
동시에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오래 개발해온 사람일수록 안다. 시니어를 시니어로 만드는 건 타이핑 실력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판단, 도메인에 대한 깊은 이해, 여러 답 중 좋은 것을 가려내는 취향,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 코드를 빠르게 짜는 능력은 그 토대였을 뿐,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관점을 뒤집을 수도 있다. AI가 코드 작성을 가져갔다는 건, 주니어가 예전보다 훨씬 일찍 "진짜 시니어의 일"에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3년쯤 CRUD를 짜야 닿을 수 있던 판단과 설계의 영역에, 입사 첫 해부터 발을 들인다. 사다리의 첫 계단이 사라진 게 아니라, 사다리 자체가 다른 모양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전환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설계하지 않으면, 주니어는 "일찍 판단의 영역에 노출"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AI의 출력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된다. 갈림길이 분명하다.
우리가 시도하는 것들
그래서 우리는 몇 가지를 실험하고 있다.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해보는 중인 것들이다.
코드 리뷰를 가르침의 장으로. AI가 코드를 쓰는 시대에 코드 리뷰는 덜 중요해진 게 아니라 더 중요해졌다. 우리는 리뷰를 "통과/반려"의 절차가 아니라 "왜 이게 좋은가, 왜 저건 위험한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로 쓰려 한다. 주니어가 가장 빠르게 배우는 곳이 여기다.
AI와 페어링하되, '왜'를 멈추지 않기. AI가 답을 내놓으면 우리는 주니어에게 묻는다. 이 코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볼 수 있나? 다른 방법은 없었나? 이게 우리 시스템에서 안전한가? AI를 쓰는 것 자체는 막지 않는다. 다만 이해를 건너뛰는 건 막으려 한다.
도메인에 일찍, 깊이 노출. 코드는 AI가 도울 수 있지만, 기말고사 트래픽이 어떤 모양인지, 유학생의 첫 주에 무엇이 막히는지는 사람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니어를 가능한 한 일찍 실제 문제와 사용자 가까이에 둔다.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능력이 거기서 자란다.
작은 책임을 일찍 준다. 작더라도 온전히 자기 것인 영역을 맡긴다. 책임은 성장을 가속한다. 내 이름이 걸린 일에서는 AI의 출력을 무심코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주는 압력
솔직히 덧붙이면, 우리 환경은 주니어에게 쉽지 않다.
우리는 완전 원격으로 일한다. 그래서 실력도, 성장도, 정체도 투명하게 드러난다. 스스로 배우고 질문하지 않으면 옆에서 끌어주기 어려운 구조다. 누군가에게는 이게 부담이고, 누군가에게는 이만큼 빨리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채용 때부터 솔직하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주니어에게서 보려는 건 현재의 실력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정직함, 끝까지 이해하려는 집요함, 그리고 배우는 일 자체를 즐기는 태도. 이건 AI가 대신해줄 수 없고, 시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아직 모르는 것
이렇게 적어두고도,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첫 계단이 사라진 시대가 10년쯤 이어지면, 시니어로 자라난 사람의 풀 자체가 얇아지는 것 아닐까? 업계 전체가 AI에 기대 주니어의 성장을 소홀히 하면, 어느 순간 "AI에게 옳은 것을 시킬 줄 아는 사람"이 부족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개별 회사의 노력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만들어가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가 알아서 해주니 주니어는 덜 뽑아도 된다"는 결론으로 가는 회사와, "사람을 키우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회사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후자에 서 있으려 한다. 문제를 푸는 건 결국 사람이고, 사람은 저절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