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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x Education· 8

LMS를 만든 사람이 학생으로 돌아가서 본 것: 블록체인과 교육의 접점

박비봉

작년에 반년 동안 포항공대(POSTECH)에서 블록체인 교육을 받았다. 수원에서 포항까지 통학하면서.

20년간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왜 6개월이나 교실에 앉아 있었냐고 물을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다르고, 그 차이가 사업적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6개월 동안 블록체인만 배운 게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했다.

내가 만든 시스템을 학생으로 쓴 경험

포항공대 대학원 과정에서는 LMS를 사용한다. 그 LMS가 우리 회사 제품이었다.

20년간 이 시스템을 만들어온 사람이, 처음으로 학생 입장에서 그 시스템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제품을 데모하거나 테스트하는 것과, 실제로 과제를 제출하고 공지를 확인하고 성적을 조회하는 학생으로서 매일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 우리 LMS는 학습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관리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LMS는 이름 자체가 Learning Management System이니까. 하지만 "관리"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학생이 되어서야 몸으로 체감했다.

수강 신청, 출석 확인, 과제 제출, 성적 조회. 이 시스템의 모든 기능은 교수자와 행정가의 관점에서 설계되어 있었다. 학생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번 주에 해야 할 것을 확인했니?"이지, "지금 무엇을 모르고, 어떻게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가 아니었다.

200+ 대학에 시스템을 제공하면서 수많은 개선을 해왔지만, 근본적인 프레임 자체가 "학습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학생의 실제 학습 경험을 중심에 놓지 못했다. 이건 우리 제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LMS가 같은 구조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이후 블록체인과 교육을 엮어 생각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사람은 왜 배우는가: 세 가지 이유

포항공대에서 함께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은 배경이 다양했다. 개발자, 금융권 종사자, 창업자, 연구원. 나이도, 경험도 제각각이었다. 이 사람들이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서 오프라인 교육에 참여한 이유를 관찰하면서, 사람이 배우는 동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교육에 참여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식을 얻기 위해. 블록체인의 기술적 구조, 스마트 컨트랙트 개발, 합의 알고리즘의 원리. 이건 가장 명시적인 이유다.

둘째, 증명을 얻기 위해. 수료증, 인증서, 학위. "나는 이 분야를 공부했다"는 것을 외부에 증명할 수 있는 공식적인 산출물. 포항공대라는 이름이 붙은 수료증의 가치는 콘텐츠의 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셋째, 네트워크를 얻기 위해.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 6개월간 매주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면서 형성된 관계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실제로 교육이 끝난 후에도 이 네트워크는 살아 있다.

현재 교육 시스템과 에듀테크는 첫 번째 — 지식 전달 — 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AI의 발전으로 이 부분은 점점 효율적으로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둘째와 셋째 — 증명과 네트워크 — 는 여전히 기존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이 흥미로워진다.

블록체인이 교육에 줄 수 있는 것

솔직히 말하면, 현재 "블록체인 x 교육"이라고 불리는 것들 대부분은 실망스럽다. 졸업장을 NFT로 발행하거나, 수료증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종이 증명서를 디지털 토큰으로 바꾸는 것은 블록체인의 가능성 중 가장 얕은 층위다.

진짜 가능성은 더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실무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영역이라 확신보다는 탐색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겠다.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

지금 학생의 학습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LMS를 운영하는 대학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LMS 제공 업체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다. 학생이 졸업하면, 그동안 무엇을 배웠고, 어디서 어려움을 겪었고, 어떤 패턴으로 학습했는지에 대한 데이터에 학생 본인은 접근할 수 없다.

블록체인은 이 구조를 뒤집을 수 있다. 학습 데이터를 학생 본인이 소유하고, 필요할 때 원하는 대상에게만 공유하는 모델. 대학 A에서의 학습 기록, 온라인 플랫폼 B에서의 수료 이력, 기업 교육 C에서의 역량 평가 —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통합된 학습 이력으로 학생 본인이 관리한다.

이건 단순한 편의 개선이 아니다. 교육 시스템에서 권력의 이동이다. 지금은 기관이 학습자를 평가하고 인증하는 구조다.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이 학습자에게 가면, 학습자가 기관을 선택하고 평가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증명의 재설계

학위와 자격증의 가치는 "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데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학위가 증명하는 것은 "이 사람이 특정 기관에서 일정 기간을 보냈다"에 가깝다.

블록체인 기반의 증명은 더 세밀해질 수 있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을 하나의 학위로 압축하는 대신, 개별 역량 단위로 검증 가능한 증명을 발행하는 것. "이 사람은 스마트 컨트랙트 감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이 "컴퓨터공학 학사"보다 채용 담당자에게 더 유용할 수 있다.

마이크로 크레덴셜(micro-credential)이라는 개념은 이미 있지만, 발행 기관의 신뢰성과 상호 운용성이 문제다. A 기관이 발행한 마이크로 크레덴셜을 B 기관이 인정하는 표준이 없다. 블록체인은 이 표준화 문제에 기술적 해법을 제공할 수 있다. 발행 기관의 서명이 검증 가능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며, 기관 간 호환이 프로토콜 수준에서 보장되는 구조.

학습 커뮤니티의 인센티브 설계

포항공대에서의 6개월 경험 중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은 사실 강의 내용이 아니라 수강생들과의 교류였다. 하지만 교육이 끝나면 이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구조적 인센티브가 없다. 카카오톡 단체방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해진다.

DAO(탈중앙화 자율 조직) 기반의 학습 커뮤니티는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 될 수 있다. 학습에 기여하면 토큰을 받고, 그 토큰으로 커뮤니티 내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추가 학습 자원에 접근하거나, 다른 멤버에게 멘토링을 요청하는 구조. 학습 자체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기여에 인센티브를 붙이는 것이다.

이건 현재의 학습 플랫폼이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 — 학습 공동체의 지속성 — 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물론 토큰 이코노미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는 것도 알고 있다. 설계의 디테일이 핵심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것들

이 글이 "블록체인이 교육을 혁신한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솔직히 블록체인과 교육의 접목은 아직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논의가 부족한 영역이다.

기술은 되지만 제도가 안 된다. 블록체인으로 학위를 발행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 학위를 교육부가 인정하는가? 기업의 채용 담당자가 신뢰하는가? 기술적 가능성과 사회적 수용 사이의 간극이 크다.

사용자 경험이 안 된다. 지갑을 만들고, 개인 키를 관리하고, 트랜잭션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 대부분의 학생에게 높은 진입 장벽이다. 블록체인이 뒤에서 동작하되 사용자는 의식하지 않는 수준의 UX가 필요한데, 아직 거기까지 오지 않았다.

인센티브 설계가 어렵다. 토큰 이코노미는 잘 설계하면 강력하지만, 잘못 설계하면 투기나 어뷰징을 유발한다. 교육이라는 맥락에서 어떤 행동에 보상을 주고, 어떤 행동은 보상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육학적 판단과 경제학적 설계가 동시에 필요한 난제다.

"왜 블록체인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다. 학습 데이터의 학생 소유, 마이크로 크레덴셜, 커뮤니티 인센티브 — 이것들이 반드시 블록체인이어야만 가능한 것인가? 중앙화된 시스템으로도 상당 부분 구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추가 가치 — 탈중앙화된 신뢰, 위변조 불가능성, 기관 간 호환성 — 가 그 복잡성을 정당화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LMS를 만드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

그럼에도 나는 블록체인과 교육의 접목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세 가지 — 지식, 증명, 네트워크 — 중에서 현재 기술이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둘째와 셋째에 블록체인이 구조적 해법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LMS를 20년 운영해온 입장에서, 학습 데이터의 소유권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고 있다. AI가 개인화된 학습을 제공하려면 학습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 데이터를 기관이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학생이 기관을 바꿀 때마다 학습 이력이 단절된다. 학생이 자기 데이터를 소유하고 이동시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교육 시장의 경쟁 구도 자체가 바뀐다. 좋은 데이터 활용 능력을 가진 플랫폼이 학생을 유치하게 되니까.

당장 제품에 블록체인을 넣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은 기술적 성숙도, 제도적 환경, 사용자 인식 모두가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방향성을 미리 고민하고 실험하는 것과, 시장이 움직인 후에 따라가는 것은 다르다.

마치며

6개월간 학생으로 돌아간 경험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블록체인을 배우러 갔지만, 교육 자체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 자기가 만든 제품을 사용자 입장에서 써본 것이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화면 뒤에 앉아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과, 과제 마감에 쫓기면서 앱을 여는 것은 전혀 다른 관점을 준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기술로, 어떤 속도로 바뀌어야 하는지는 교실에 앉아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LMS를 만드는 사람이 가끔은 학생이 되어보는 것. 그것 자체가 제품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박비봉은 (주)달빛소프트의 CEO로, 200+ 대학에 학습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5년 포항공대 블록체인 교육 과정을 수료했으며, 블록체인과 AI가 교육에 가져올 변화를 탐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