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회사에서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다
박비봉
나는 20년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 세월 동안 기술 트렌드는 수없이 바뀌었다. 웹 2.0, 모바일, 클라우드, 블록체인, 메타버스. 어떤 건 진짜였고 어떤 건 거품이었다. 오래 사업을 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도 지나가겠지"라는 관성이 생긴다.
AI는 달랐다. 이건 지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코드를 쓰는 걸 본 순간
확신은 특정 순간에 왔다. AI가 코드를 쓰는 걸 직접 본 순간이다.
물론 그 전에도 AI 코딩 도구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자동 완성이 좀 더 똑똑해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써보니 차원이 달랐다. 요구사항을 설명하면 동작하는 코드가 나왔다. 한두 줄 자동 완성이 아니라, 파일 단위로, 기능 단위로. 완벽하진 않았지만, 방향은 명확했다. 이 기술은 점점 좋아질 것이고, 좋아지는 속도는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빠를 것이다.
그때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나는 위기감이었다. 우리 회사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다. 코드를 잘 작성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AI가 코드를 쓴다면, 우리가 20년간 쌓아온 가치의 상당 부분이 흔들릴 수 있다. 내일 당장은 아니더라도, 3년 후에는? 5년 후에는?
다른 하나는 흥분감이었다. 우리 같은 10명짜리 팀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극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인력의 한계 때문에 포기했던 프로젝트, 엄두를 못 냈던 규모의 일을 해볼 수 있게 된다.
위기감과 흥분감. 이 두 감정은 지금도 공존한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이다.
"이건 선택이 아니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과 실제로 조직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느끼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경영자도 많다. 나도 확신이 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결정적이었던 건 AI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을 실제로 해냈을 때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핵심은 이거다. 기존에 우리 팀 규모로는 엄두를 못 냈을 작업을 AI 에이전트를 활용해서 해낸 경험이 있었다. 그것도 품질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쓰면 좀 더 편해지는" 도구가 아니다.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바꾸는 기술이다.
그래서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AI를 도입하지 않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인터넷 시대에 오프라인만 고집한 회사와 같은 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어느 순간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진다.
두려웠던 것들
확신이 있었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솔직히 쓴다.
AI에 너무 의존하면 위험하지 않은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AI 모델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외부 서비스에 핵심 역량을 의존하는 구조가 건강한 것인가? API 가격이 오르면? 서비스가 중단되면? 모델 성능이 갑자기 떨어지면?
이 걱정은 지금도 유효하다.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관점의 전환이 있었다. AI에 의존하는 것이 위험한 게 아니라, AI 없이 경쟁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리스크는 양쪽 다 있다. 문제는 어느 쪽 리스크가 더 큰가 하는 것이고, 지금 시점에서 답은 분명했다.
실질적인 대응도 했다. 특정 도구에 종속되지 않도록 워크플로우를 설계하고, AI가 만든 코드를 사람이 반드시 검증하는 프로세스를 넣었다. AI가 없어져도 동작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되, AI가 있으면 10배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를 목표로 했다.
팀원들이 따라올 수 있을까
10명의 시니어 개발자. 평균 경력 15년. 자기만의 개발 방식이 확고한 사람들이다. "이제부터 AI 중심으로 일합시다"라고 말하는 건 쉽지만, 실제로 15년간 몸에 밴 작업 방식을 바꾸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 걱정은 기우였다.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돌이켜보면 이유가 있었다. 경험이 많은 개발자일수록 반복 작업의 고통을 잘 안다. 같은 패턴의 CRUD를 수백 번 만들어본 사람은, 그 작업을 AI가 가져가는 것에 저항감이 아니라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오래 개발해온 사람일수록 "코드를 쓰는 것"보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더 관심이 있다. AI가 전자를 가져가면, 후자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각자 다른 속도로 적응했고, AI가 만든 코드를 신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방향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기술을 오래 해온 사람들은 기술의 흐름을 읽는 감각이 있다.
경쟁력이 이동하고 있다
20년간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면서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왔다. 초기에는 "좋은 개발자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답이었다. 그 다음에는 "특정 기술이나 도메인에 깊은 전문성을 갖는 것"이었다. 지금은 다시 변하고 있다.
AI 시대에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쟁력은 작은 팀으로 큰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큰 프로젝트를 하려면 큰 팀이 필요했다. 사람 수가 곧 처리 능력이었다. AI가 구현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면 이 공식이 깨진다. 10명이 100명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중요한 건 인원수가 아니라 그 10명이 올바른 문제를 정의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느냐다.
이건 우리 같은 회사에게 기회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수백 명짜리 개발팀과 경쟁할 때, 우리의 약점은 항상 규모였다. 하지만 AI가 규모의 제약을 완화해주면, 우리의 강점 — 빠른 의사결정, 도메인 깊이, 20년간의 경험 — 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동시에 위험도 있다. 작은 팀으로 큰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래서 코드를 잘 쓰는 것만으로는 이제 부족하다. 코드 작성 능력은 AI가 범용화시키고 있다. 남는 건 도메인 지식, 고객과의 신뢰 관계, 수년간 운영하면서 쌓은 데이터와 노하우다. 이건 AI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줄 수 없다.
전환하지 않는 회사에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아직 AI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경영자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1년 전만 해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마라. 우리도 준비가 된 상태에서 전환한 게 아니다. AI 기술은 거의 매주 바뀐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보다,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배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전사 전환이 아니라 한 프로젝트부터 시작하라.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AI 중심으로 바꾸려고 하면 혼란만 커진다. 하나의 프로젝트, 하나의 팀, 하나의 도구부터 시작하면 된다. 성공 경험이 생기면 확산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 팀에서 AI 도구를 적극 수용한 것도, 위에서 강제한 게 아니라 효과를 직접 체험한 결과였다.
코드 리뷰 프로세스는 더 강화하라. AI가 코드를 쓰면 코드 리뷰가 덜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반대다. AI가 만든 코드는 겉보기에 그럴듯하지만 미묘한 문제를 품고 있을 수 있다. 특히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이나 보안 측면에서 그렇다. 사람의 검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아직 답을 모르는 것들
솔직히 모든 것에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경영자로서 아직 답을 못 찾은 질문들이 있다.
AI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의 성장 경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코드를 직접 써보는 과정에서 배우던 것들을, AI와 함께 일하는 환경에서는 어떻게 습득하게 할 수 있는가? 우리 팀에서도 이 문제를 현재 겪고 있고, 아직 명쾌한 답은 없다.
AI 모델의 발전 속도를 비즈니스 계획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6개월 후 AI가 어떤 수준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데, 그 위에서 1~2년 단위의 사업 계획을 세우는 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느낌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 방향이 완벽하지 않아도,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일단 움직이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진다.
마치며
이 글의 제목을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정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AI 도입 자체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진짜 선택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깊이 전환하느냐다.
우리는 20년간 코드를 써서 문제를 풀어왔다. 앞으로도 문제를 푸는 건 같다. 다만 푸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위기감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위험했을 선택은 "좀 더 지켜보자"였을 것이다.
지켜보는 시간은 끝났다.
박비봉은 (주)달빛소프트의 CEO로, 20년간 소프트웨어 개발과 사업을 해왔습니다. 현재는 AI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과 교육 기술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